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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9월, 남구 소식

[울산 남구의 길 이야기-2] 모든 길은 남구로 통한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고대 로마제국은 유럽 전역을 아우르는 넓은 영역을 자랑했고, 당대 인간의 예술과 사상, 지식과 의식의 기준점이 되었다. 로마가 남긴 영향력은 크고도 길어 로마 문명은 그리스 문명과 함께 서양 문화의 원류를 이루고 있다.

‘팍스 로나마’라는 이름으로 전성기를 구가했던 세상의 중심, 로마 제국을 잘 설명해 주는 말이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였다.

길은 이어지고 통한다. 울산 남구의 길 역시 언제 어디에서든 사통팔당 통하고 이어지며 사람과 차량, 물자를 통행시킨다. 길은 소통의 공간이기도 하다. 단순한 물리적 통로의 역할을 넘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산업과 기술, 문화를 이어주며 문명을 만들어 나간다.

강물이 흘러가듯 길 위의 것들도 흘러간다. 과거와 현재를 흘러가며, 멀리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울산의 중심, 남구의 길. 이제 모든 길은 울산 남구로 통한다.

장생옛길

장생옛길은 장생포 사람들이 겪은 삶의 기억을 따라가 볼 수 있는 짧지만 긴 이야기길이다. 장생포에 들어온 고래잡이 배가 바닷가에 부려놓은 고래를 해체해 삶고, 나르고, 이고지고 사고팔면서 살아온 사람들의 이야기가 고스란히 묻어 있다.

정식 도로명 주소는 울산 남구 장생포고래로179번길. 대로인 장생포고래고기거리의 샛길, 700m 남짓한 완만한 오르막길이다. 지금은 초라한 샛길이지만 예전에는 이 길이 장생포 마을 중앙을 가로지르던 곳으로 장생포와 울산읍내를 오가는 유일한 간선도로였다고 한다. 장생포 주민들은 이 길을 거쳐 지게를 지고, 수레를 끌며, 함지에 이고 읍내로 나가 고래고기를 팔았다. 좁다란 골목길을 이루는 집과 벽 곳곳에 장생포 주민들의 옛 추억과 역사를 말해주는 사진과 그림이 벽화로 표현되어 있다.

고래고기거리 큰 길에서 장생포부인회 경로당이 위치한 골목 초입이 장생옛길의 시작이다. 그 끝은 울산공단이 바라보이는 매암동 가는 등성이다. 동네 이름은 예전에 우물이 있었고 물이 풍부했다고 해서 샘골 혹은 새미골로 불렸다. 옛 우물은 우짠샘라는 이름으로 흔적만 남아있다. 인근 지역의 개발로 물길이 바뀌고 끊어져 샘이 마른지 오래되었다.

고샅을 들어서면 처음 만나는 옛 흔적은 신위당(神位堂)이라는 신당이다. 마을 제사(洞祭)를 지내던 당산 나무 주위에 지었다. 고래잡이가 한창일 때는 해마다 10월이면 마을의 안녕과 풍어, 고래잡이의 안전을 기원하며 크게 제를 지냈다지만 지금은 제사 풍습과 규모가 대폭 축소되었다.

길을 따라가면 만나는 야구 유니폼을 입고 힘차게 공을 던지는 소년의 동상은 프로야구 롯데자이언츠 투수였던 윤학길이다. 장생포초등학교에 다닌 윤 선수가 이곳에서 공을 던지며 야구놀이를 했다는 사실을 전해준다. 길 중간쯤에서 잠깐 벗어나 언덕으로 올라가면 장생 옛노래마당이 나온다. 마이크를 들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의 동상도 있는데 장생포 출신 가수 윤수일이다. 이곳은 그의 생가터라고 한다. 고래잡이 배 선장 중 한명인 박영복씨의 집은 길 중간쯤에 있다. 박 선장 집 벽에는 그에 대한 설명과 사진이 벽화로 구성되어 있다. 그가 고래잡이에 썼던 작살포도 그려져 있다.

오르막이 끝나는 지점쯤에는 유명한 ‘만원짜리를 문 개’가 있다. 지게에 고래고기를 싣고 고개를 넘는 장꾼들 뒤로 아이들이 따라가는 조형물이다. 아이들 뒤로는 누런 개가 시퍼런 만원짜리 몇장을 물고 이들을 따른다. 옛 장생포가 얼마나 흥청망청 풍요로운 곳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상징적인 모습을 표현했다. 세간의 우스개로 한때 번성했다는 곳이면 어디에나 “한참 잘 나갈 때는 개도 만원짜리를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실제로 개가 돈을 물고 있는 모습을 만들어 놓은 곳은 여기뿐이다.

장생옛길은 장생포의 중심도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좁고 호젓하다. 산비탈 밑에 한 줄로 이어진 가옥들은 작고 옹색해 보인다. 중간중간 주민들이 짓는 작은 텃밭들도 눈에 띈다. 호박, 도라지, 옥수수, 콩 등 주민들이 키우는 작물이 골목길만큼이나 아담하게 길옆에서 자란다. 집 밖에 내놓은 빨래며 생활도구, 운동기구 등과 TV안테나와 가로등이 이 골목에 엄연히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골목 초입에선 할머니 몇 분이 담소를 나누며 시간을 보내거나, 중간쯤에선 어느 아주머니가 골목에 앉아 무료함을 달래는 모습을 목격할지도 모른다. 이곳을 찾는 이들은 그냥 관광지에 온 구경꾼이 아니라 다른 이들의 생활공간에 들어왔다는 것을 생각하고 무례하거나 시끄럽게 구는 것을 삼가야 할 필요가 있다.

시간이 머무른 골목, 장생옛길을 되돌아 나오면 갑자기 현대화된 장생포항이 눈앞에 펼쳐진다. 대형 크레인이 곳곳에 팔을 벌리고 섰고, 크고작은 배가 눈앞에서 떠다닌다. 어둑어둑할 때면 바다 건너 공단과 점점이 박힌 배들의 현란한 불빛이 30~40년 전으로 시간 여행을 하다 돌아온 방문객을 맞이한다.

수암로(秀岩路)

울산광역시 남구 신정동 공업탑로터리에서 신여천사거리까지 이어지는 3.7km의 도로. 울산 최초의 근대적 간선도로 6호 도로의 동쪽 구간이다.

동서오거리 수암시장사거리 야음사거리 KT남울산지사교차로 새터삼거리 수암동변전소네거리 등 주요 교차로를 거친다. 신정4동, 대현동, 야음장생포동 등 세 개 동 주민센터가 모두 수암로를 끼고 들어서 있다. 60년대부터 울산시내와 미포국가산업단지를 연결하는 울산의 산업도로 역할을 하면서 출퇴근 차량과 화물 운송량 증가를 뒷받침했다. 고속도로 못지않게 훤칠하고 넓었던 이 도로는 울산특정공업지구 건설에 투입된 정부 국토종합건설단 건설국이 조성을 맡았다. 당시 건설국이 자리잡았던 대현사거리는 지금도 건설국사거리라는 이름으로 익숙하게 불린다. 건설국 근처에는 세관도 있었는데 이를 기억하기 위해 세관공원도 조성되어 있다.

‘수암(秀岩)’은 울산 신선산 북쪽 지역의 바위가 수려하다는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그래서 이 일대를 수암동이라 했고 이 지역을 지나는 도로 이름 수암로도 여기에서 따 왔다.

수암로에 인접한 수암시장은 한우 시장으로 불릴 정도로 한우가 유명하다. 시장 정육점에서 한우를 사서 바로 옆 양념초장집에서 즉석으로 구워먹는 한우 연탄불구이 맛이 일품이어서 미식가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대현고교, 야음중교, 대현초교, 용연초교 등의 학교도 수암로와 가까이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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