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명예기자 윤경숙
필자는 1989년 4월, 남산자락에 위치한 고층 아파트에 입주를 했다.
그 당시에는 남산로가 개통되기 전이어서 태화로타리와 신복로타리를 오가는 길이 없었다.
다만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로 울퉁불퉁한 숲길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30여 년 전, 원당마을에는 먹거리가 조성되지 않은 것은 물론 딱히 먹을 만한 식당이 없었다.
한 번은 점심을 먹으려고 원당마을로 내러와 식당을 찾았다.
그 때 간판도 없이 유리창에 ‘○○민물’이라고 적힌 허름한 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별 기대도 없이 문을 열고 들어갔다가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식당 안에는 공무원으로 보이는 손님들이 자리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점심 식사를 하려면 꽤 기다려야할 판이었다.
그냥 나오기가 뭐해서 기다렸다 겨우 빈자리가 생겨 점심 식사를 할 수 있었다.
그때는 젊어서 손맛이 어떤 맛이지도 모르고 그냥 한 끼의 식사를 했다고만 생각했다.
30년이 지난 지금 다시 식당을 찾았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없던 간판이 걸렸다는 것 외에는 그대로였다.
당연히 있어야할 간판이 조금은 어색하게 느껴졌다.
당시 40대였던 주인은 70대를 훌쩍 넘긴 어르신이 되어 추어탕을 끓이고 있었다.
여전히 식당 안은 북적거렸다.
주인은 세월이 흐른 만큼 몸 상태도 좋지 않아 보였다.
무릎이 좋지 않아 수술을 했다고도 했다.
그럼에도 식당의 문을 닫지 못하는 이유는 단골 손님들의 간곡한 부탁 때문이라고 했다.
이휴정에서 매일 식사를 하러 오는 손님은 “아지메요, 절대 아프지말고 오래오래 사이소. 그래야 추어탕을 계속 먹을 수 있다아닌교?”
대부분의 손님들이 추어탕을 먹고 나가면서 하는 인사말이 “사장님, 아프지 말고 오래오래 사세요. 또 추어탕 먹으러 오겠습니다.”
주인은 “맛있게 드셨다니 제가 고맙습니다.”라고 화답을 한다.
좀 한가한 틈을 타 주인에게 여쭈어 보았다.
기자 : “코로나19로 손님이 없어 문을 닫은 식당이 태반인데, ○○민물에는 손님이 끊이지 않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주인 :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은 반찬가지수와 추어탕맛 때문에 온다고 손님들이 그렇게 말을 하는데, 글쎄요.”
기자 : “손맛이 있긴 있나봅니다. 예전에는 손맛이 뭔지도 몰랐는데, 손맛이 이런거구나! 하고 그 느낌의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손맛은 어렸을 적에 엄마가 해 주었던 추억속의 아련한 맛, 그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비밀의 맛 그런 맛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주인 : “그 정도는 아닌 것 같고, 그저 푸짐하게 차려주는 게 전부라고 생각하고 반찬이든 밥이든 배부르게 드시고 가면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습니다.
참! 자랑거리가 될지 모르겠지만 매일매일 신선한 재료를 구입해 그날 쓸 양 만큼만 음식을 만들어 손님상에 올리는 다는 것. 힘은 들어도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기자 : “그래서 시각도 미각도 신선하게 느껴졌나 봅니다. 좀 쉬여야할 시간인데, 인터뷰에 응해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끝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주인 : “누추한 식당을 찾아주셔서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손님들께 정성껏 음식을 만들어 올리겠습니다.”
손님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았던 이유가 주인의 푸짐한 인심과 푸근한 손맛이었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다.
가족과 함께 태화강국가정원을 한 바퀴 돌고 배꼽시계가 신호를 보내면 ‘○○민물’에 들러 그녀의 손맛을 한 번 느껴보시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