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구명예기자 윤경숙
9월17일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저녁, 신정시장에 과일이나 살까하고 나갔다.
필자는 평소에 대형마트 보다 재래시장을 즐겨 찾는 편이다.
재래시장을 즐겨 찾는 이유는 물건을 사면서 주인과 대화도 나눌 수 있고, ‘덤’이 있기 때문이다.
신정시장 도로변에 앉아 과일을 팔고 있는 상인(김장순여사)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김여사는 철 지난 자두와 익지도 않은 풋사과를 팔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자두의 반은 썩어있고, 사과는 붉은 빛이 전혀 없는 풋사과였다.
김여사 옆에 쪼그리고 앉아 저걸 누가 사갈까하고 의심의 눈으로 지켜보았다.
30여분이 지나자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김여사의 구수한 입담에 지나가는 사람들은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농사지은 거라 싸게 파니더. 아무데도 이렇게 싸게 안파니더. 아무리 못생긴 사람도 이 자두를 마이 무그면 이뻐지니더. 거짓말 아이니더. 사가이소…..”
살까말까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김여사는 자두가 당뇨에 좋다는 PR까지 꺼내들었다.
“겉은 이래도 속은 멀쩡하니더. 내가요 당이 280이 넘었는데, 이 자두를 묵고는 당이 260으로 내려갔니더…..”
어떤 사람은 김여사의 입담이 기가 찬다는 듯 허탈웃음을 짓기도 하고, 어떤 사람은 “버스 왔어요. 빨리 담아 주세요. 빨리 빨리요” 하면서 가는 걸음을 재촉했다.
그렇게 30여분 만에 김여사의 과일은 동이 났다.
김여사를 지켜보면서 물건을 파는 기술이 신통방통했다.
30여분 쪼그리고 앉아 있었더니 다리에 쥐가 나는 것도 힘들었지만 도로변의 매연은 숨을 못 쉴 정도로 고통스러웠다.
잠시도 견디기 힘든 도로변에서 매일 장사를 하고 있는 김여사의 고충을 여쭈어 보았다.
기자 : “여사님, 장사는 언제부터 하셨습니까?”
상인 : “마흔 다섯살부터 했을낌더.”
기자 : “형제자매는 어떻게 됩니까?”
상인 : “딸만 다섯인데, 저는 둘쨉니더.”
기자 : “성함은요?”
상인 : “김장순임니더. 우리 엄마가 이름을 지을 때 장사해서 먹고 살라고 장순이라 지었다카데요.
어른이 되어 저는 엄마가 말한대로 장돌뱅이가 되어 살고 있심더.”
기자 : “자녀는요?”
상인 : “2남1녀고요. 다 출가해서 잘 살고 있습니더.”
기자 : “과일은 어디서 가져옵니까?”
상인 : “시누가 농사지어서 보내준겁니더. 팔아주면 돈도 많이 줘요”
기자 : “아, 그러시구나! 참 올해 연세가 어떻게 됩니까?”
상인 : “팔십서이라요.”
기자 : “세상에! 연세가 팔십삼셉니까? 연세가 그렇게 많은 줄 몰랐습니다.”
“인생의 반은 장사를 하고 사셨는데, 어려운 점은 없습니까?”
상인 : “시장에 나오면 사람도 구경하고, 세상도 구경하고, 돈도 벌고, 장사하는 게 너무너무 재밌고 좋아요.
“어려움이 있다면 단속반이 나와 장사를 못하게 할때가 가장 힘들지요. 그것만 아니면 장사하는 게 얼마나 재밌는지 몰라요.”
내가 번 돈으로 1년에 서너번은 놀러도 가고, 여행도 가고 합니더.”
기자 : “현명하게 사시네요. 그건 그렇고 의자에도 앉지도 않고 하루종일 땅바닥에 앉아서 장사를 하면 건강은 괜찮습니까?”
상인 : “왜 안아프겠는교? 아파도 장사를 나와야 덜 아픕니더. 아야 아야 하면서도 장사를 나와야 사람 구경도 하고, 힘도 나고 그렇니더.”
기자 : “힘은 들어도 행복하게 장사를 하시는 것 같아 보기가 참 좋습니다.
팔십삼세에도 직업을 가졌다는 것에 박수를 보냅니다. 무엇보다 즐거운 마음으로 재밌게 장사를 하신다니 ‘장사의 신’이십니다.
웃는 얼굴로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건강하시고, 신정시장을 지키는 ‘장사의 신’, ‘장사의 전설’로 남아 주셨으면 합니다.”
“울산시민 여러분, 혹시 신정시장에서 김장순여사를 보시면 많은 격려와 응원 부탁드립니다.”